24.12.14 악몽

이옴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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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14.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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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은 마치 깊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기어나오는 짐승 같다. 그것은 한순간에 우리를 덮치지 않는다. 처음에는 작고 사소한 불안으로 시작된다. 익숙한 풍경이 조금씩 비틀리고, 눈앞의 장면이 낯설게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어긋난 조각들이 합쳐져 공포가 된다. 우리는 도망치려 하지만 발은 움직이지 않고, 소리를 내려고 하지만 목은 막혀 버린다. 그렇게 악몽은 우리를 가둔다.

 

악몽 속 시간은 늘 이상하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깨고 나면 찰나의 순간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남기는 감각은 긴 하루 내내 우리를 따라다닌다. 꿈속에서 느꼈던 공포, 혼란,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불길한 기운은 아침 햇살 속에서도 희미해지지 않는다. 악몽은 깨어난 후에도 우리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가장 소름 끼치는 것은 악몽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소재로 삼는다는 점이다. 낯선 곳에 있는 것 같지만, 그 장소는 어딘가 익숙하다. 나타나는 얼굴들은 분명 처음 보는 사람 같지만, 어딘가 익숙한 감정이 뒤따른다. 악몽은 우리의 기억과 감정을 파헤쳐 가장 약한 곳을 찾아낸다. 마치 우리의 내면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상대처럼, 가장 아프고 두려운 부분을 찔러댄다.

 

그러나 악몽은 단순히 우리를 괴롭히는 것만이 아니다. 악몽은 종종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 우리가 억누른 감정, 피하고 싶은 진실, 혹은 직면하지 않은 상처들이 꿈속에서 형체를 이루고 나타난다. 악몽은 우리가 잊고 지내던 것들을 기억하라고 속삭이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악몽에서 깨어난 후의 그 순간을 생각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지고, 세상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찰나의 안도감. 하지만 그 안도 속에는 묘한 불안이 섞여 있다. "왜 그런 꿈을 꿨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악몽은 그렇게 우리의 하루에 한 조각의 그림자를 남긴다.

 

결국 악몽은 우리 안의 어두운 조각들을 보여주는 거울 같은 존재다. 불편하고 무서운 경험이지만,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악몽은 우리를 뒤흔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 어둠 속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인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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