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27 첫 눈

이옴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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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2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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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겨울의 공기가 서서히 차가워지는 걸 느끼고도, 첫눈이 내릴 거라는 생각은 늘 잊고 있다. 그러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흩날리는 하얀 점들이 보이면 그제야 깨닫는다. "아, 첫눈이다." 그 순간 마음 한편에서 작은 설렘이 피어오른다.

 

첫눈은 마치 기다리던 손님 같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반가움과 동시에, 어디에서부터 준비해야 할지 모를 약간의 당황스러움도 함께 온다. 첫눈은 풍경을 덮기 전에 우리의 마음부터 덮는다. 눈이 내리는 그 순간, 세상은 조금씩 고요해지고, 어쩌면 우리의 내면도 그렇게 잠시 평온해지는 것 같다.

 

첫눈이 내리면 기억이 따라온다. 작년 이맘때의 모습,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전의 누군가와의 첫눈. 그날의 말들, 웃음, 그리고 차가운 손끝까지도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첫눈은 늘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고, 가끔은 우리가 잊고 있던 무언가를 조용히 꺼내놓는다. 마치 “잊지 말아줘”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어떤 이에게 첫눈은 그저 추운 날씨의 시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첫눈은, 시작의 다른 이름이다. 눈이 내리는 밤거리를 걷다 보면, 세상은 새로운 이야기의 한 페이지가 열리는 것만 같다. 발자국이 없는 눈밭 위를 걷는 느낌처럼,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첫눈은 금방 사라진다. 아침이면 녹아버리거나, 흙빛으로 변해 더 이상 눈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첫눈이 남기는 건 풍경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이다. 첫눈이 내리는 것을 본 사람은 그 순간의 설렘과 고요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첫눈을 본다는 건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목격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 어딘가에도 하얀 눈이 내려앉는 일이라고. 그것이 첫눈이 주는 가장 큰 선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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