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3 민주주의의 위기: 계엄령 선포를 바라보며
이옴므
·2024. 12. 3. 23:45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120319311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은 다시금 역사의 갈림길에 섰다. 대통령은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라는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국가의 위기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 조치는 우리 헌정사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한 사건으로, 그 정당성에 대한 의문과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계엄령의 명분과 실체
대통령의 담화는 마약 범죄, 민생 치안, 국회의 입법 독주, 반국가 세력 척결 등을 이유로 계엄령 선포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는 국가 안보와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는 계엄령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계엄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 한해 발동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전쟁도, 내란도 아닌 정치적 갈등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엄령은 과잉 대응일 뿐 아니라 헌정 질서를 심각히 훼손하는 행위로 비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담화에서 “국회는 범죄자 집단 소굴이 됐다”는 극단적 표현과 더불어, 입법부를 “괴물”로 규정하는 발언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국회의 역할은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다. 설령 다수당의 입법 독주와 예산 삭감이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반국가 행위”로 몰아세우고 군사적 수단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민주주의의 후퇴
계엄령은 필연적으로 국민의 기본권 제한을 수반한다. 집회·결사의 자유는 물론, 언론의 자유와 사법 독립도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계엄령은 정권 유지와 반대 세력 탄압의 도구로 악용되며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계엄령은 국민적 합의와 법적 정당성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이번 계엄령 선포는 이러한 합의 과정을 생략한 채 일방적 판단으로 강행된 듯한 인상을 준다.
더욱이 대통령의 담화는 “반국가 세력 척결”이라는 모호하고 광범위한 표현으로 계엄령의 목적을 설명했다. 이는 특정 세력에 대한 무분별한 탄압을 정당화할 우려를 낳는다. 정부가 "반국가"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한다면, 이는 단순한 행정적 조치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진정한 위기는 무엇인가?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했다고 주장했지만, 현재의 진정한 위기는 국가 기관 간의 불신과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 갈등이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대립, 정치적 양극화는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지만, 이는 대화를 통해 조정해야 할 문제이지, 군사적 개입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 계엄령 선포는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신뢰도를 약화시키고, 내부적으로는 국민 간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계엄령이 정권 유지나 정치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경우, 이는 역사와 국민 앞에서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대화와 민주주의로의 복귀
지금 대한민국이 필요한 것은 계엄령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성숙한 정치적 리더십이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봉합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체제다. 설령 입법부의 다수당이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하더라도, 행정부는 이를 견제하며 균형을 맞출 책임이 있다. 계엄령을 선포하기 전에 정부는 정치적 중립성과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국민은 계엄령으로 인한 기본권 제한을 감수하기 전에, 정부가 모든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했는지 묻고 답을 들어야 한다. 또한, 이번 사태는 정치권 전체가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며 국정을 마비시키는 정쟁은 국민의 삶을 희생시킨다.
민주주의를 위한 성숙한 선택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이는 갈등과 위기 속에서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체제를 의미한다. 계엄령은 민주주의의 실패를 인정하는 극단적 선택일 뿐이다. 대통령과 정치권은 계엄령이라는 위험한 도박을 중단하고, 헌법과 국민의 뜻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국민은 결코 강압과 폭력을 통해 평화를 얻을 수 없음을 역사를 통해 배워왔다. 이제 대한민국은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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